2020년 1월 3일 출산 기록
산모나이 : 만 35세
출산병원 : 순천향대학교 부속 서울병원 (진료:최규연 / 출산:이정아)
출산방법 : 자연분만 (무통o, 제모o, 관장x, 회음부절개x)
출생일시 : 2020년 1월 3일 15:45 (39주0일)
출생기록 : 48.8cm, 3.24kg (남아)
최규연 교수님이 두 아이를 받아주셨다는 직장 선배님의 추천과, 아무래도 큰 병원이 낫지 않겠냐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진료는 임신 초기부터 순천향 서울병원 최규연 교수님께 받기로 했다. 이 분은 워낙 자연주의 출산으로 유명하시지만 나는 필요에 따라 의료적 처치를 수반하는 일반적인 출산 방식으로 마음을 먹었다.
최교수님 스타일은 워낙 쿨하고 과잉진료 없이 필요한 조치만 해주셔서 나와는 궁합이 잘 맞는 편이었다. 출산 후기들을 보면 회음부 절개와 봉합이 신의 손이라고 하던데, 안타깝게도 교수님이 일정을 조정할 수 없는 휴가와 성질 급해서 일주일 빨리 나온 우리 아드님 출산일이 딱 겹치는 바람에 결국 이정아 교수님께서 출산을 도와주셨다. 이정아 교수님도 출산 당시 격려도 잘 해 주시고 회음부 봉합 등 마무리까지 깔끔하게 해주셔서 썩 괜찮았다.
그 동안 임신중에 겪었던 증상들을 나열해 보자면,
- 임신기간 전체 : 변비와 빈뇨
- 초기~16주까지 : 두통, 입덧 (소화불량, 육류거부, 속쓰림+오심)
- 19주~23주 : 임신성소양증 (평생 겪은 증상중에 가장 고통스러웠지만 초기에 빡세게 관리하고 잡았더니 다른 산모들에 비해선 짧게 겪고 지나간 듯)
- 24주~32주 : 배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허리가 아파지는것 말고는 컨디션 좋은편.
- 33주 이후 : 치핵 탈출 증상이 발생하면서 걸어다닐때 쓸리고 피나고 변 보면서도 치열이 생겨 고생. 게다가 본격적으로 배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잘 때마다 화장실도 자주 가야하고 생선 뒤집듯 몸 돌려가며 자느라 숙면이란걸 해본 기억이 없음.
이렇게 각종 임신 증상들로 고생했지만 아가는 뱃속에서 평균 주수대로 착착 잘 크고 별다른 문제 없이 잘 커주어서 다행스럽게도 아가때문에 걱정한 적은 없었다. 특별히 나 스스로도, 양가 부모님들도 분만방식에 대해 고집하는 바가 없었고, 26주 진료부터 아가가 이미 머리가 아래를 향한 상태였기에 자연분만을 해야겠다고 자연스레 결정을 했다.
37주3일까지 근무하고 출산휴가를 사용하였고, 출퇴근 외에는 특별히 몸을 움직이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막달에 6회짜리 문화센터 요가강습 등록했다가 첫 수업 후 치핵이 심해져서 두 번째 수업부터는 날도 춥고 귀찮고 핑계거리도 있으니 가지 않은 건 안비밀;;
37주6일차에 첫 태동검사를 했었는데 아가도 너무 잘 놀고 있고 자궁수축도 하나도 없다고 해서 어쩐지 출산까지는 좀 여유가 있겠다 하며, 출산 짐싸기 등의 귀찮은 일은 미뤄두고 집에서 낮잠도 펑펑 자고 시간낭비의 극한을 맛보며 출산휴가 기간엔 주로 집순이 생활을 했다.
일주일을 그렇게 살다보니 좀 무료해져서 앞으로 외식하기 힘들어질테니 그간 가고싶었던 식당들 예약해서 다녀보자 하며 38주6일차부터는 먹킷리스트 도장깨기를 하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첫 식당만 가보고 바로 그 날 저녁에 진통이 걸릴줄은 상상도 하지 못한 것!
콧물같은 분비물이 38주3일차부터 좀 많이 나오기 시작했었지만 피는 비치지 않아서 크게 신경은 안쓰고 있었는데 그순간부터 이미 몸은 출산에 대해 신호를 보내고 있던거라니...?
아무튼 거나한 외식 후 거나하게 대변을 두 차례나 보고 (평소에 변비라 뭘 많이 먹어서 밀려나온건가 싶었는데 이것도 어쩌면 출산 준비였을지도...) 몇 개월 동안 귀찮아서 미뤄둔 일이었는데 급작스럽게 미용실에 가서 머리도 잘랐다.
저녁 6시, 머리를 자르고 마무리를 하던 그 순간 뭔가 생리통때 느끼던 자극점들에 강한 통증이 1분 정도 느껴졌다. 처음엔 이러다 말겠지 하며 미용실에서 나와 먹고 싶었던 과자도 사고 저녁으로 먹을 햄버거도 사서 집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집으로 가는 와중에도 그 통증이 일정 주기로 반복이 되고 있었고, 집에 오자 마자 심상찮음을 느끼고 여태 안싸둔 출산짐을 싸기 시작했다. 아, 출산하러 입원하면 제대로 먹을 수가 없다고 하니 진통 중간중간 햄버거도 섭취했다^^;; 임부속옷이 좀 부족해서 주문해 둔게 마침 그날 도착해서 세탁하고 건조기 작동도 심지어 덜 끝난 상태라니, 건조기 없었으면 어쩔 뻔?
10분 내외로 통증이 왔다갔다 하는 와중에 정신없이 짐싸고 집도 정리하는데 화장실에 갔더니 이슬도 비쳤다. 진통 간격이 5분으로 줄어들고 통증도 조금 더 세진다. 밤 12시에 분만실에 전화했더니 산모님 목소리는 아직 차분해 보인다며 (초산이고 아직 때가 아닌것 같다는 뉘앙스?) 한 시간 정도 더 지켜보고 정 불안하면 와보라고 하더라. 통증이 점점 세졌고 더 심해지면 병원에 가기가 힘들거 같아 결국 새벽 1시 39주0일차에 내원했다.
우선 태동/수축검사로 수축이 5분정도로 잡히는걸 확인하시고는 당직 레지던트 선생님이 내진을 해주셨다. 진료때도 출산 기미가 없어 내진은 해본 적 없는 상태에서, 정말 무방비로 내 소중한 곳을 내어드렸는데 출산 내진이라 그런지 너무 아팠다. 진짜 막 쑤셔대는 느낌이랄까... 자궁문이 3-3.5센치 정도 열린 상태로 경부도 딱딱하지 않아보이고 수축도 주기적으로 있는걸로 봐서 입원하는게 좋을 것 같다는 소견에 따라 입원을 결정했다.
그런데 우리 병원은 새벽에 마취과선생님이 상주하지 않으셔서 오전 8시반은 되어야 무통을 맞을 수 있다고 한다. 막 쑤셔댄 내진 때문인지 진통주기가 거의 3분정도로 줄어든 상태로 계속 아파오는데 새벽 6시쯤 또 내진했지만 여전히 3.5센치 수준. 이 때는 진짜 제왕절개를 하고 싶어지더라고. (하지만 후에 이것 보다 더 심한 진통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한..)
진통주기가 너무 짧고 강도도 강해서 관장했다가 화장실 가는길에 지릴것 같아서 관장은 못할 것 같다 결론 내리고 제모만 진행했다. 오기 전에 거나하게 대변도 두 번 봤으니 괜찮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
드디어 무통을 달아주시러 선생님이 오셨고 나도 무통천국을 느끼며 이제 잠 좀 자볼까 희망에 가득찼는데 그것은 오산이었다?! 배보다 허리쪽 통증이 더 심했던 터라 무통이 초반에 조금 듣는 듯 싶더니 한 시간쯤 지나니 오롯이 허리진통으로 몰려오더라. 통증에 좀 둔한 편이고 어지간한 고통은 잘 참는 편인데 진심 생전 처음 느껴보는 고통이라 너무 아파서 엉엉 울기까지 했다.
얼굴엔 땀과 눈물 범벅, 아래는 내진혈과 이슬들로 난장판 피범벅 상태로 말 그대로 사경을 헤맸다. 나는 출산 후에 피떡이 되어있을 거라는 얘기는 들었지만 출산 전 과정부터 이렇게 아랫도리를 피범벅으로 내어놔야 하는지 몰랐어서 충격도 좀 받았다.
우리 병원은 금식 지침이 따로 없어서 입원중에 식사를 다 가져다 주었지만 진통하느라 먹을 수도 없었고, 호흡하느라 갈증은 나는데 진통주기가 너무 짧으니 화장실 갈 기운도 없어서 물도 잘 못마시게 되더라. 출산하러 가면 립밤은 꼭 챙겨야 한다! 중간중간에 입술 마를때 그거라도 없었으면 입술 다 찢어졌을듯.
그나마 오후 12시 5-6센치, 오후 2시 6-7센치, 오후 3시 8센치 정도 열렸다고 점점 진행이 빨라져서 오늘 안에 낳을 수 있겠다고 조금만 더 힘내라고 한다. 3시부터는 진통실에서 가족분만실로 옮겨서 힘주기 연습을 하는데 처음엔 요령도 없고 너무 아파서 힘주면서 자꾸 소리쳤더니 힘줄때 숨 10초 참으면서 소리내지 말고 해보라고, 항문이 열리는 느낌이어야한다고 열심히 연습시켜주셨다. 항문을 열었더니 관장을 못한 나의 대장은 응아를 배출했지만 선생님들 진짜 좋으신분들... 조용히 닦아주시면서 대변 나오면 잘하고 있는거라고, 누워서 힘주기 힘들면 변기에 앉아서 10분동안 더 힘줘보자고 하시길래 변기에 앉은채로 진통 올때마다 대변 보듯이 힘을 열심히 줬다.
그 이후에 분만대로 갈려고 일어났더니 진짜 골반에 뭔가 낀 것 같고 이 불편한 느낌을 빨리 없애고 싶어서 분만대에서 정말 사력을 다해서 소리도 안치고 진통이 세게 올때마다 끙 힘주기를 했더니 오후 3시45분 무언가 따뜻한 것이 우르르 쏟아지는 느낌이 들며 아기가 태어났다.
캥거루 케어라고 맨살에 아가를 얹어주는데 너무 작고 따뜻한 소중한 생명체. 너를 만나려고 내가 이렇게 사력을 다했었구나. 이렇게 힘들었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구나. 뭔가 뭉클하고 감격적이었다. 원래 애기 참 안좋아하는 사람인데, 세상에! 내 아가는 너무 예뻤다.
회음부 절개를 하신다고 했는데 그 전에 애기가 나와버려서 좀 찢어졌다고, 그래서 이곳저곳 꿰매느라 후처치에 시간이 좀 오래 걸렸다. 그래도 분만 직후에 진통제 주사 한 번 맞고 소변 보는것도 큰 무리 없이 잘 걸어다녔다. 오히려 치핵이 역대급으로 탈출해서 항문쪽이 쓰라려서 며칠 고생했다.
힘 잘못주면 얼굴이랑 눈 실핏줄 다 터진다고 듣긴 했는데 얼굴은 사수했지만 눈 핏줄이 좀 터졌다. 아래로만 힘을 주는게 생각보다 쉽지는 않더라.
순천향병원 특징이 모자동실에 모유수유를 권장하고 있어서 분만 당일날 체크업을 끝내고 아기를 분만실로 데려오셨다. 젖물리는 자세와 기저귀 갈기같은 초보 엄마에게 필요한 내용들을 상세히 알려주시고, 아기 케어가 힘들거나 신생아실에 맡기려면 바로 연락하면 된다고 하셨다.
뭐가 나오진 않았을 것 같은데 본능적으로 젖을 물고 쭙쭙 빨아대는 아기가 신기했다. 물론 아기도 엄마도 처음이라 능숙하게 되지는 않았지만 분만 하루이틀 사이에 자세잡고 익숙해지는게 좋다며 많이 도와주셨다. (하지만 결국 모유가 개미오줌만큼만 나와 완분의 길로 접어들 줄은 몰랐지ㅋㅋ)
4시간 이내에 소변을 봐야 병실로 전원할 수 있다고 해서 물을 거의 2리터를 마시고 시원하게 소변을 보고선 1인병실로 옮겼다. 다른 병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1인실은 세면도구, 수건, 보호자 침구를 제공해줘서 불편하지는 않다. 다만 새벽 다섯시반부터 혈압재고, 수액 맞으라고 바늘 꽂고, 약먹으라고 가져다주시고, 밥먹으라고 가져다주시고, 청소한다고 들어오시고...하느라 제대로 쉬기는 어렵다.
남편이 진통중에 일그러진 내 얼굴은 몇 장 찍었던데...(할많하않) 이렇게 후기를 쓸 줄 알았으면 정신 있을때 분만실이랑 입원실 사진이라도 찍어 둘 걸 그랬다. 기억이 가물가물 해지기 전에 이렇게 텍스트로 남겨야지. 그리고 몇 년 후에 이 고통이 잊혀지고 민하의 예쁜 어린 시절이 그리워 질 때, 이 글로써 그 때의 그 고통을 되뇌이며 둘째는 절대 없다고 다짐할테다.
마무리는 갓 태어난 우리 민하 사진으로♡
[키로쿠 아내가 작성함]